이스라엘의 시작을 이야기하다 … 고난과 박해를 지나서 새로운 땅으로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는 20세기에 일어난 유대 민족에 대한 박해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고 한 민족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미움과 악의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 결과 현대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아니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20 세기 안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른 채 지나가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 들로부터 상처와 멸시를 받아왔다. 그 결과 20세기에 이르러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이 만들어 진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박해였고 하나는 변절이다.

초대 교회가 생겨난 이후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고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교회의 중심은 로마로 옮겨졌고, 기독교가 공인 되면서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교회들이 왕성하게 됐다.

기독교의 발전과 더불어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날로 더해져 갔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그들을 향해서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그 어느 나라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나게 되고 역사 속에서 언제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등장하는 셔일록이라는 상인은 유대인이었고 그는 잔인하고 냉정한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누구도 왜 그가 그렇게 잔인하고 냉정한 수전노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저 유대인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변한 것은 결국 박해와 핍박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슬픈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그 가운데 유대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철저히 종교적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린 이유를 찾으려는 이들과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타협하여 그들 안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투쟁과 융합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전자를 우리는 종교 유대인들이라고 칭하고 후자를 세속 유대인들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 둘은 각자의 선택 후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 종교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자신들의 마을을 세우고 종교적 관습과 형태를 유지해 가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욱 종교적 모습에 매달리게 됐다. 세속 유대인들은 도시와 마을에 들어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그들이 사는 나라와 도시 그리고 문화 안에서 동화되어 사는 길을 택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종교적 관습은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은 나름대로 프랑스인으로 독일인으로 유럽인으로 사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은 이런 유대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12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있었던 중세 암흑기에 마녀 재판과 이단 심판으로 수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고, 19세기에 이르러 또다시 민족주의 운동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20세기에는 나치에 의해서 민족이 말살될 뻔한 위기에 놓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역사 속에서 교회는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가톨릭교회가 있었지만 20세기에 일어난 박해에는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독일의 개신교 교회들도 침묵으로 일관하여 유대인들의 박해를 방조하거나 묵인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이들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놀랍게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국가로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들의 삶의 터전을 위해서 노력해온 벤구리온과 유대기구(Jewish Agency)는 유대인들이 살 수 있는 국가 건설을 위해서 지금의 이스라엘땅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영국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점령 시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 탄생하게 됐다. 19세기 말 유대국가론을 집필했던 테오도르 헤르츨이 보지 못했던 유대 국가의 탄생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그 민족을 향하여 선포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노력해서 되어질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의 예언 성취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가 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 성경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선한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함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당했던 고난이 결코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과 독선적인 종교성에서 비롯된 무지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실수마저도 용납하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에 담긴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는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 돌아보아야 하는 큰 역사적 사건이며 성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 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