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멀고도 가까운 불편한 이웃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난 5월 1200여 발의 미사일이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이후 긴장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이스라엘 관련 뉴스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길고 오래된 분쟁에 관한 것이다. 뉴스를 듣다 보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마치 민족의 원수이자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두 존재처럼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원래부터 존재했고 이스라엘은 마치 그 나라를 침략한 제국주의적 모습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일까? 팔레스타인은 영원한 약자이고 이스라엘은 침략자라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은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은…”, “예수님이 사역하신 팔레스타인 지역은…”이라는 설명을 종종 듣게 된다. 팔레스타인은 예수님 당시부터 있었던 것과 같은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모순이 존재한다. 역사 속에서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가 팔레스타인으로 불린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이라는 것이 민족적으로 혹은 특정 국가적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다. 1948년 이스라엘이 과거 영국령 팔레스타인 영토에 세워지기 이전에 팔레스타인은 지역적 명칭이었다.

로마시대 영토의 지역별 이름들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의 기원을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로마시대 이후이다. 과거 예수님 시대 당시 이스라엘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사마리아라고 하는 중부지대, 남쪽의 유대아 그리고 북쪽의 갈릴리 지역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 당시에 등장하는 지명에 사마리아와 유대아 그리고 갈릴리라고 불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A.D. 135년에 있었던 유대항쟁(바르코크바항쟁) 이후 로마의 황제인 하드리아누스는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아를 시리아 팔레스티나(Syria Palaestina)로 바꾸고 예루살렘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게 된다.

이후에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시절 이 지역은 그 명칭이 달리 불리다가 오스만 제국 이후 서방국가들이 다시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역사가들에 의해 지역의 공식명칭이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은 누구일까?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역에 살던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어떤 민족이던 어떤 종교였던 이 지역에 살던 이들을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그 속에는 아랍인도 있고 드루즈인들도 있다. 유목하는 베두인도 있고 정착해 살아온 이집트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유대인들도 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당시 이 지역은 영국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제도와 통치 아래 있던 이 지역은 중동에서도 가장 경제가 발전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흐름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던 유대인들이 점차 팔레스타인령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분쟁의 씨앗이 된다. 분쟁의 주된 원인은 경제권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었다. 이전까지 큰 농장을 유지하던 아랍인들은 현대식 농법과 자금을 유럽에서 들여와 척박한 땅을 싼 값에 사들여 농장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는 유대인들이 불편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럽에 있는 그들만의 연결망을 통해서 이 지역에서 생산해낸 과일과 채소들을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더 이상의 유대인 유입을 막아야 한다면서 영국에 요구했고 영국이 이를 받아들여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유입을 막게 된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관계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불편한 관계는 이후 아랍궐기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끊임없는 분쟁의 시작이 된다.

사실 처음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입되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이미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아랍인들에게서 가장 안 좋은 땅들을 사들였다. 유대인들이 얻은 땅은 습지이거나 사막이거나 도시에서도 먼 산악 지역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곳을 개척하면서 미래를 꿈꾸고 자신들을 환영한 아랍인들과 함께 여기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것을 꿈꿨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아리 샤비트의 『나의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승리와 비극』(*한국판 ‘약속의 땅 이스라엘’)에는 이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다. 아리의 할아버지였던 첫 개척자들이 가졌던 희망과 꿈 그리고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그들이 이 땅에 대해서 어떤 정치적 욕망도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약속의 땅에서조차 목숨과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결국 생존에 대한 투쟁이 정치적인 투쟁으로 변모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갈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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